저작권은 아름다운 개념이다.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가 갖는 권리를 인정하고, 창작물 소비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해주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문제는 바로 저작권이 그 의의에 맞게 실현될 수 있게 하는 일이 너무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 너무 많은 비용과 자원이 필요하다.
음악 특히 대중 가요 분야는 저작권에 대해서라면 참으로 모범적이다. 음악의 저작권을 관리해주는 공인된 협회가 있고, 맑고 투명한 소비가 가능하도록 하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있다. 듣고 놀란 바로 작품의 저작권이 작품 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일지라도 창작에 참여한 지분에 비례해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가사로 치자면 1절을 쓴 사람과 2절을 쓴 사람이 각각 자신의 창작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꼭 그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얻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일이기도 하다. 딱 자신이 창작한 정도의 권리를 가진다!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까 작품의 소비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고, 저작료를 징수하고 또 지급하는 공인된 기준이 있고 또 그것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의무, 책임, 역량, 권력을 지닌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이 해당 분야에 종사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해야하고 또 불합리한 요소를 개선하는 의사 결정 체계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그것만을 위해 일을 하는 인력과 그들에게 지급할 인력 비용과 업무를 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절대로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적지 않은 비용과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또 그 이전에 이를 위한 비용과 자원을 감당할 수 있는 큰 시장이 있어야 한다. 대중 가요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튼튼하고 합리적인 저작권 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던 건 그것의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 때문이었다. 반대로 시, 행위 예술, 그 외 여러 비주류 예술 분야들이 제대로된 저작권 관리 체계를 가지지 못한 건 쓴웃음이 날 정도의 작고 가여운 시장 규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의 시인들 중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 시인은 한 명도 없다고 본다. 시인은 으레 굶으면서 글 쓴다는 말만큼 후진적인 주장도 없겠다. 어째서 시인들은 대중 가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작고 하찮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시인은 시를 통해 돈을 버는 걸 당연스럽게 포기하고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응당히 가져야만 하는가. 시단에서 높게 인정받는 시인조차 시 하나로 돈을 벌어 차나 아파트를 사는 것이 요원하다. 결코 좌시해서 안되는 문제다.
시가 인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옳다. 하지만 이것으로 설명을, 이야기를 멈추는 건 옳지 않다. 왜 시는 인기가 없는 걸까. 왜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걸까. 사람들이 대중 가요를 즐기듯이 시를 읽게끔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힙합을 보자. 정말이지 세상 끝나는 날까지 지하 세계에서 저들의 문화로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되던 힙합은 발라드, 알앤비, 록 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 가요의 한 범주로 자리 매김했다. 적당한 수준의 인지도를 가진 래퍼들이 전문직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광경이 이제 낯설지 않다. 놀랍게도 그 힙합은 한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듣지도 못할 음악'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시는 너무 어려워서 대중적으로 즐기기는 힘든 분야다'라는 편견은 아주 틀려 먹은 생각이다.
힙합 세계의 이야기를 좀 더 가져와 보자. 내가 중학교 때만해도 힙합엔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있었다. 전문적인 힙합을 하는 사람들과 대중적인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나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기지도 않는 선긋기였지만 그땐 꾀 진지했다. 마치 문단의 오래 묵은 평론가들이 웹소설, 판타지, sns 시 등을 진심으로 응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힙합 세계에서는 좀 더 과격했다. 대중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힙합이 아니다'라고 손가락질 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 오버로 넘어간 사람들을 배신자처럼 여겼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쇼미더머니2에 화나라는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피처링을 위해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인터뷰에서 말하길 방송에 출연하는 걸 팬들이 싫어할까봐 겁난다고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웃기는 일이다. 언더와 오버의 경계는 이제 없다. 더 중요한 건 그 무너짐이 이룩한 엄청난 진보다. 엄청난 장르적 확장이 이루어졌고, 기가 막히는 창의적인 시도들이 생겨나고, 하루에 걸러 명곡들이 배출된다. 또 수많은 어린 친구들이 래퍼를 꿈으로 가진다. 난 초중고를 거치며 시인이 꿈이라고 말하는 친구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요즘엔 다를까? 절대 아니라는 것에 이 블로그를 건다.
내가 보았을 때 시가 가지는 가능성은 가히 무한하다. 시가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고, 시를 통해 새롭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많다. 지금처럼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가 비대한 의식 세계를 가진 현대에서는 더더더욱 그렇다!
이야기가 또 장황해졌다. 요지는 시 또한 힙합이 겪었던 실로 놀라운 떡상을 이루어낼 수 있단 점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사람들이 시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기가 막힌 시를 써내는 천재 시인의 등장을 기다려야 하는걸까? 대중과 문단을 두루 쥐고 흔드는 파격적인 시인의 출현이 시 세계를 확장시킬 기대해야 하는걸까? 가슴 뛰는 일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그저 반짝거리는 여론의 관심을 이끌고 이슬처럼 사라질 터이다. 사실 현재 시의 시장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런 확장의 주체는 그 대단한 시인들이 아닌,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고 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시인들이다. 그들의 몸부림이 시집의 매출량을 증가시키고 있고, 시와 관련된 문화 활동을 더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 해답의 단초는 바로 그들에게 있다. 아마추어 시인 집단!! 바로 내가 포함된 그 집단이다.
아마추어 시인들을 어떻게든 늘려야 한다. 또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꼭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를 애호하고 향유하는 사람들도 늘려야 한다. 전자를 공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놀랍게도 후자의 공략법도 다르지 않다. 시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건 다양한 시들과 다양한 시 문화를 생산해 낼 것이고 그건 자연스레 시 애호가들의 증가를 이끌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유튜브가 참 적절한 예시가 된다. 유튜버들의 개인 매출이 공개됨과 동시에 개인 방송의 유리 천장은 깨졌다.
이제 NFT가 나온다. 사실 NFT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를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의 등장' 그 자체이다. NFT는 이 시장을 지탱하는 한 기둥이다. 고맙게도 튼실한 기둥이긴 하다.
현재 시는 사고 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시는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문제 있나? 실체 없는 코인들이 몇 백, 몇 천만원에 팔리는 세상이다. 소유의 의미는 이미 확장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소유는 더 이상 실물적인 보유에 근거하지 않는다.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사물이 있고, 그 사물이 내 것이라는 걸 내가 아닌 모두가 인정할 때 나는 그 사물을 소유한다. NFT는 소유를 보장하는 기술이다. 훗날엔 사물이 우리 집 내 방에 있다고 내가 그것을 소유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해지리라 점쳐본다. 그 미래의 순간엔 모든 소유가 기술적 보증을 근거할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의 순간엔 아주 자연스레 한 개의 시는 한 명의 소유자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미 그 개념에 익숙하다. 솔직히 말해 이런 앞선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 문단은 꼭 알고 감동해야 한다. 물론 더 큰 선물이 있다. 시를 전문적으로 사고 파는 온라인 시장을 기획하고 있다. 이 시장이 활성화되는 날이 곧 한국 시단이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날이다. 어떤 놀라운 변화와 새로운 창조들이 생겨날 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마무시함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실체가 없는 미래의 상황에 지금 내 가슴이 떨릴 정도다.
저작권에 관한 문제는 그것으로 저절로 해결될 일이다. 시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이루는 시장의 규모가 무시될 수 없는 사회적 무게를 가진다면, 자연스레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저작권 관리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다. 그 시스템에 비호로 유능한 시인들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예와 부를 얻을 것이다. 내가 만약 그때까지 제대로된 프로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좀 배가 아플 수도 있을 듯하다. 뭐, 어쩌면 그것을 굳이 바랄 필요 없는 영예와 부를 얻은 후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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